[주일설교, 2021.08.29, 김진영 담임목사] 사울 왕의 변화: 하나님의 종에서 마귀의 종으로
1. 기본 정보
| 항목 | 내용 |
|---|---|
| 일자 | 2021년 8월 29일 (주일) |
| 설교자 | 김진영 담임목사 (서울중앙교회) |
| 설교 제목 | 사울 왕의 변화: 하나님의 종에서 마귀의 종으로 |
| 성경 본문 | 사무엘상 22장 6-19절 |
| 함께 읽은 말씀 | 사무엘상 22:19 / 사무엘상 15:3 / 베드로후서 3:9 / 갈라디아서 2:20 |
| 영상 | https://youtu.be/yqJIyZh-ixI (설교 약 36분 + 기도) |
작성 근거: 유튜브 영상의 한국어 자동 자막 전체를 읽고 정리했습니다. 자동 자막은 고유명사를 자주 틀리게 받아 적으므로(예: "도 애기·또 외귀"→도엑, "i'm 엘레 기·아이 매력"→아히멜렉, "노베"→놉, "서대 반 집사"→스데반 집사, "칼렙 성경공부"→갈렙 성경공부) 성경 본문에 맞추어 바로잡았습니다.
이 영상의 자막은 설교 첫머리가 아니라 에돔 사람 도엑을 설명하는 대목부터 시작합니다. 본문 낭독과 설교 도입부는 자막에 없어 이 노트에 담지 못했습니다.
2. 한눈에 보는 설교의 흐름
| 순서 | 내용 |
|---|---|
| ① 고자질 | 에돔 사람 도엑이 사울 왕에게 잘 보이려고 핵심을 빼고 진실을 왜곡해 보고한다. |
| ② 명령과 거절 | 사울이 제사장들을 다 죽이라고 명령하지만, 신하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움직이지 않는다. |
| ③ 같은 마음 | 사울과 마음이 같은 사람은 함께 싸운 부하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방인 도엑이다. |
| ④ 두 진멸 명령 | 하나님은 아말렉을 진멸하라 하셨고(삼상 15:3), 사울은 제사장들을 진멸하라 했다(삼상 22:19). 하나님의 백성을 진멸하는 것은 마귀의 일이다. |
| ⑤ 질문 | 맡긴 사람에게 가족을 다 잃은 것과 같은 일을 당하신 하나님이 왜 사울을 당장 치지 않으시는가? |
| ⑥ 오래 참으심 |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회개하기를 원하신다(벧후 3:9). 내가 아는 하나님이 성경의 하나님인가? |
| ⑦ 두 가지 오해 | 가벼운 죄는 없다(폴 워셔 목사와 아홉 살 아이). 용서받지 못할 만큼 큰 죄도 없다(갈렙 성경공부, 다메섹의 사울). |
| ⑧ 더 큰 은혜 | 사울 왕은 바울보다 더 큰 은혜를 받았다. 목숨을 두 번 건졌으나 끝까지 거절했다. |
| ⑨ 독이 된 복 | 사울은 은혜를 못 받은 사람이 아니라, 받은 은혜와 축복이 독이 된 사람이다. |
| ⑩ 나의 변화 | 우리는 다 변한다. 처음 믿을 때와 지금, 나는 어떻게 변했는가? |
| ⑪ 은혜 안의 사람 |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갈 2:20). 열매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 열매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
| ⑫ 결론 | "부족하지만 저를 써 주십시오"라고 늘 기도하며 하나님의 종의 자리에 있자. |
3. 결론 — "부족하지만 저를 써 주십시오"
- 하나님은 참 은혜 가운데 살아가도록 우리를 이미 불러 주셨다. 내가 그 은혜 안에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나님의 종으로 쓰임 받는 자리에 있기를 바란다. 마음을 다해 애를 써야 한다.
- 하나님은 자격 없는 우리를 목사로, 장로로, 권사로, 집사로, 섬기는 자리로 불러 주셨다.
- 사울은 받은 복이 독이 된 사람이다. "왕이 됐으니 내가 찾을 것은 다 찾았다"는 것이다.
-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 이렇게 기도한다. "하나님, 아무런 이유 없이 은혜로 제게 이런 직분을 주셨는데, 죽는 날까지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고 싶습니다. 저에게는 실력도 능력도 없지만 저를 불러 주신 주님께서 써 주실 것을 믿습니다. 주님의 교회를 위해 저를 써 주십시오. 이 땅에서 남은 삶을 써 주십시오. 부족하지만 써 주십시오."
-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날마다 커지게 해 주십시오. 교회와 이웃에 대한 사랑이 날마다 커지게 해 주십시오." 이 기도를 항상 드리면서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4. 함께 드린 기도 제목
설교를 마치며 목사님이 말씀을 기억하면서 함께 간절히 기도하자고 주신 기도 제목이다.
- 쓰임 받는 삶 — "하나님, 저의 남은 삶을 정말로 하나님의 종으로 써 주십시오."
- 커지는 사랑 —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점점 커지게 해 주십시오. 이웃에 대한 사랑이 점점 커지게 해 주십시오. 교회를 향한 사랑과 충성이 점점 커지게 해 주십시오. 그 은혜를 저에게 주십시오."
이어서 회중이 함께 소리 내어 기도했다. 이 구간은 자막이 거의 알아볼 수 없게 깨져 있어 정리하지 못했다.
마무리 기도: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와 은혜와 축복이 사울 왕에게 독이 되었고, 평생 하나님의 종으로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는 복을 받았는데도 오히려 그것 때문에 은혜의 자리에서 떨어져 마귀의 종으로 끌려다니며 자기 영혼과 삶을 파괴하는 유혹과 시험에 빠진 것을 바라보며 은혜를 구하는 기도. 우리의 남은 삶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 하나님의 종으로 귀하게 쓰임 받는 삶이 되기를, 서울중앙교회의 직분자와 교인으로, 또 사회에서 맡기신 직책과 부르심과 삶의 모든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기를, 세상 사람들이 사는 것처럼 살지 않고 빛의 자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를, 하나님 앞에 서게 되었을 때 "착하고 충성된 나의 종이었다"는 칭찬과 인정을 받기를, 성령님께서 말씀으로 날마다 깨우쳐 주시고 연약함을 불쌍히 여기셔서 지혜와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며 살아가는 한 주간이 되기를 구하는 기도.
5. 성경 본문 (사무엘상 22:6-19) 줄거리
본문은 개역개정 성경의 내용을 풀어서 요약한 것입니다. 19절은 설교 중 회중이 함께 읽은 구절이라 그대로 옮겼습니다. 정확한 문장은 성경을 직접 펴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구절 | 내용 |
|---|---|
| 22:6 | 사울이 다윗과 그 일행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 사울은 기브아 높은 곳 에셀 나무 아래에 손에 단창을 들고 앉아 있었고 신하들이 곁에 서 있었다. |
| 22:7-8 | 사울이 신하들을 꾸짖었다. "베냐민 사람들아, 이새의 아들이 너희에게 밭과 포도원을 주고 천부장, 백부장을 시켜 주겠느냐? 너희가 다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고, 내 아들이 이새의 아들과 언약을 맺었는데도 내게 알려 주는 자가 하나도 없다." |
| 22:9-10 | 사울의 신하들 가운데 서 있던 에돔 사람 도엑이 대답했다. "이새의 아들이 놉에 와서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에게 이른 것을 내가 보았습니다. 아히멜렉이 그를 위해 여호와께 묻고, 음식도 주고,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도 주었습니다." |
| 22:11 | 왕이 사람을 보내 제사장 아히멜렉과 그 아버지의 온 집, 곧 놉에 있는 제사장들을 불렀고 그들이 다 왕에게 왔다. |
| 22:12-13 | 사울이 물었다. "네가 어찌하여 이새의 아들과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고, 그에게 떡과 칼을 주고 그를 위해 하나님께 물어서 그가 매복했다가 나를 치게 하려 했느냐?" |
| 22:14-15 | 아히멜렉이 대답했다. "왕의 모든 신하 가운데 다윗같이 충실한 자가 누구입니까? 그는 왕의 사위이고 왕의 호위대장이며 왕실에서 존귀한 자가 아닙니까? 내가 그를 위해 하나님께 물은 것이 오늘 처음도 아닙니다. 왕의 종은 이 일에 관해 크든 작든 아는 것이 없습니다." |
| 22:16 | 왕이 말했다. "아히멜렉아,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고 네 아버지의 온 집도 그럴 것이다." |
| 22:17 | 왕이 곁에 선 호위병들에게 "돌아가서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죽이라"고 명령했다. 그들이 다윗과 한편이 되어 다윗이 도망한 것을 알고도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왕의 신하들은 손을 들어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죽이기를 싫어했다. |
| 22:18 | 왕이 도엑에게 "네가 돌아가서 제사장들을 죽이라"고 했다. 에돔 사람 도엑이 제사장들을 쳐서 그날에 세마포 에봇 입은 사람 85명을 죽였다. |
| 22:19 | "제사장들의 성읍 놉의 남녀와 아이들과 젖 먹는 자들과 소와 나귀와 양을 칼로 쳤더라." |
6. 설교 내용 정리
6-1. 도엑의 고자질 — 핵심을 빼고 진실을 왜곡하다
에돔 사람 도엑이 어떻게 사울 왕의 신하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 도엑이 지금 사울 왕 앞에서 말을 하고 있다. 시편 52편에는 다윗이 이 도엑에 관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내용이 있다.
도엑이 사울 왕에게 고자질하는 것을 보면 진실을 다 말하지 않고 왜곡한다. 도엑은 에돔 사람, 이방 사람으로서 왕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파악해서 왕에게 잘 보여 출세하려는, 권력을 잡으려는 사람임이 분명하다.
- 도엑은 아히멜렉과 다윗의 대화를 다 들었다. 그런데 사울 왕에게 보고할 때는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빼뜨린다.
- 아히멜렉이 다윗을 도와준 이유는 딱 한 가지다. 다윗이 "사울 왕의 충성된 신하, 사울 왕의 사위로서 왕이 내린 특별한 임무를 수행 중이다"라고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아히멜렉은 염려하기는 했지만 그 말을 믿고 다윗을 도와준 것이다.
- 도엑은 그 말을 빼뜨린다. 오히려 이렇게 말한 셈이다. "아히멜렉은 왕이 말한 것처럼 다윗이 왕을 반역하는 줄 알고도 의도적으로 다윗을 도와주었습니다. 다윗이 왕을 피해 도망가는 것을 알고도 빵을 제공했고, 무기가 없는 그에게 왕을 대적할 수 있도록 골리앗의 칼을 주었습니다."
도엑의 말을 가만히 들어 보면 이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리고 사울 왕은 자기가 듣고 싶은 소리만 듣고 있다.
6-2. 제사장들을 죽이라는 명령, 움직이지 않는 신하들
그 이야기를 듣고 사울 왕은 하나님의 제사장들을 다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여기서 정말 놀라운 사실이 있다. 광기에 사로잡히고 미움에 사로잡힌 사울 왕이 제사장들을 죽이라고 명령했는데, 사울과 함께 지냈던 신하들, 부하들이 왕의 명령을 듣지 않는다.
목사님은 회중에게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만약 우리가 사울 왕의 측근으로서 회의에 참석하는 믿을 만한 장군이었다면, 왕이 엄명을 내릴 때 그 명령을 거절하는 데에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 사울의 부하들도 도엑이라는 사람을 잘 알았을 것이다. 아히멜렉이 왜 다윗을 도왔는지 그 변명도 다 들었을 것이다.
- 부하들이 보기에도 사울 왕의 명령은 부당하다, 굉장히 의심스럽다, 이렇게 함부로 무고한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 만약 부하들의 마음에도 사울 왕처럼 "아히멜렉이 왕을 반역하고 대적하는 다윗을 의도적으로 도왔다"는 확신이 있었다면, 모든 부하가 한마음으로 왕의 명령을 듣지 않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 부하들은 사울이 얼마나 다윗을 죽이려 하는지 안다. 얼마 전에 자기 눈으로 보았다. 다윗을 변호하는 자기 아들, 장남 요나단에게 창을 던져 죽이려 했던 아버지 사울 왕의 모습을 다 보고 알고 있다.
- 그런데도 지금 이 명령 앞에서는 부하들이 하나도 움직이지 않는다.
부하들의 마음속에는 두려움이 있다. 왕의 명령을 거절할 때 자기들이 당할 일에 대한 두려움, 사울 왕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제사장을 친다고 할 때 하나님 앞에 저지르게 될 죄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다.
|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 | 행동 | |
|---|---|---|
| 사울 왕 | 없다. 하나님의 제사장을 죽이는 것은 하나님을 향해 반역하는 것과 똑같은데, 그 일에 대해 용감하다. | 죽이라고 명령한다. |
| 사울의 부하들 | 있다. 사울과 달리 하나님을 경외한다. | 위험을 무릅쓰고 왕의 명령에 불순종한다. |
6-3. 사울과 똑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 — 에돔 사람 도엑
그 자리에 사울 왕과 똑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다. 에돔 사람 도엑이다.
- 성경이 굳이 "에돔 사람"이라고 밝히는 것은, 이 에돔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다는 뜻이다.
- 사울 왕과 똑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그와 함께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던 부하들이 아니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믿음이 전혀 없는 이방인의 마음과 사울 왕의 마음이 똑같다.
부하들이 명령을 듣지 않자 사울은 도엑에게 명령했다. "놉으로 군사를 이끌고 가서 놉에 있는 제사장들을 다 죽이라." 도엑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왕에게 잘 보이려는 마음만 가득했기 때문에, 아무런 걱정 없이 놉에 가서 하나님의 제사장들을 철저하게 죽인다.
6-4. 똑같은 진멸 명령, 정반대의 대상
목사님은 사무엘상 22장 19절과 15장 3절을 회중과 함께 읽으셨다. 22장 19절은 사울 왕의 명령을 받은 도엑이 놉에서 한 일이고, 15장 3절은 하나님이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뒤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명령하신 내용이다.
"제사장들의 성읍 놉의 남녀와 아이들과 젖 먹는 자들과 소와 나귀와 양을 칼로 쳤더라." (삼상 22:19)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하니" (삼상 15:3)
두 구절을 잘 보라고 하셨다. 진멸하라는 명령은 똑같다.
| 누구의 명령 | 진멸의 대상 | 사울의 태도 | |
|---|---|---|---|
| 삼상 15:3 | 하나님 | 하나님의 원수 아말렉 | 듣지 않았다. |
| 삼상 22:19 | 사울 |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하나님의 제사장들 | 철저하게 시행했다. |
- 사울이 하나님의 종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원수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울은 그 말씀을 듣지 않는다. 하나님의 종이 아니다.
- 제사장들과 그 가족, 자녀, 젖 먹는 아이, 나이 많은 사람, 제사장 마을의 모든 소와 나귀와 양을 진멸하는 것, 곧 하나님의 백성을 진멸하고 죽이는 것은 마귀가 하는 일이다. 문자 그대로 마귀가 하는 일이다.
하나님의 백성을 진멸하려 한 다른 명령들
- 예수님이 베들레헴에 태어나셨을 때 그 소식을 듣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나신 이를 죽이려고 두 살 아래의 모든 아이를 죽이라고 명령한 사람이 헤롯이다. 헤롯은 에돔 사람, 에돔 계열이다.
- 하나님의 백성을 진멸하려고 태어난 모든 남자아이를 나일강에 던져 죽이라고 한 것이 바로 왕의 명령이다.
- 그것이 사탄, 마귀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행하는 일이다.
사울은 하나님께 부름 받은 하나님의 일꾼, 하나님의 종이다. 그런데 지금 사울이 하고 있는 일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마귀의 일이다. 하나님의 신실한 종으로 부름 받았던 사람이 그 자리를 떠나 마귀가 하는 일의 하수인으로 쓰임 받고 있고, 자기는 그 일을 충성되게 해내고 있다.
6-5. 예화 — 지켜 달라고 맡긴 사람이 내 가족을 죽였다면
목사님은 "상상하기에도 끔찍하지만" 한번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 누군가 편안하게 살고 있는 여러분의 집에 한밤중에, 혹은 대낮에 쳐들어와 여러분의 아내와 자녀들을 무참하게 칼로 다 죽인다. 모시고 사는 연로하신 부모님도 다 죽인다. 가지고 있던 모든 재산과 애완견까지 완전히 다 없애 버렸다.
- 그런데 범인을 찾고 보니, 내 가족과 자녀와 재산과 부모를 잘 지키고 보호하라고 책임을 맡겨 놓았던 바로 그 사람이 나를 배신하고 내 가족을 다 죽인 것이다.
"여러분 가정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그 사람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 가운데 한 사람도 이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은혜를 베풀어 가족과 자녀와 모든 것을 지키도록 맡긴 사람이 배은망덕하여 오히려 내 가족을 다 죽였다면, 그것은 참을 수 없다. 반드시 죽여야 한다, 땅끝까지 지옥 끝까지 찾아가서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당하셨다.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지금 그 일을 당하셨다.
6-6. 왜 하나님은 사울에게 벼락을 내리지 않으시는가
- 그런데 왜 하나님은 사울 왕에게 벼락을 내리지 않으시는가? 재앙을 내리시거나 엄청난 진노를 퍼부으셔야 할 텐데, 왜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고 계시는가?
- 물론 엘리와 그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잘못을 저질렀다. 그러나 지금 아히멜렉과 놉에 있는 제사장들은 엘리와 홉니와 비느하스 같은 죄를 짓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경건하게 믿음 안에서 살려고 애를 쓰는 하나님의 제사장들이다.
- 대제사장과 모든 사람, 모든 가족을 다 죽였을 때 하나님은 알고 계신다. 요나단을 향해 창을 던지던 사울이 제사장들을 죽임으로써 하나님을 향해 칼을 들고 하나님을 죽이고 있다는 것을 아신다. 그런데 왜 사울 왕을 지금 당장 죽이지 않으시는가?
내가 아는 하나님과 성경의 하나님
목사님은 물으셨다. "우리는 정말로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까?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과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정확하게 맞는 하나님이십니까? 아니면 많은 차이가 있습니까?"
- 우리는 하나님이 다윗에게는 은혜를 엄청 많이 베푸시고 사울에게는 은혜를 거의 베풀지 않으신 것처럼 오해한다.
- 오늘 본문의 사건을 보고, 이전에 있었던 일들을 보고, 앞으로 진행될 일들을 보라. 하나님께서 죄인인 사울 왕에게 은혜 베푸시는 것을 포기하거나 멈추신 적이 있는가?
- 지금 당장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죽이셔야 할 것 같은데, 하나님은 신기하게도, 정말 의외의 하나님으로서, 우리가 생각하는 하나님이라면 하실 수 없는 일들을 하고 계신다.
(회중과 함께 베드로후서 3:9 낭독)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벧후 3:9)
베드로가 한 말이다. 하나님은 정말로 오래 참고 계신다. 내가 생각하는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도록 오래 참으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무도, 사울 왕이라 할지라도, 가룟 유다라 할지라도, 다윗이라 할지라도, 그 누구도 멸망에 이르지 않고 회개하기를 원하시고 회개의 기회를 끝까지 주신다. 하나님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6-7. 예화 — "나처럼 악한 죄인도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폴 워셔라는 목사님이 실제로 있었던 일을 기록한 내용이다.
- 폴 워셔 목사님이 미국 인디애나의 어떤 도시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며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라"고 했다.
- 예수님을 영접하라고 초청했을 때 아홉 살짜리 남자아이가 앞으로 나와 울면서 물었다. "목사님, 나처럼 악한 죄인도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예수님을 영접해야 한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아이의 마음에 큰 갈등이 생긴 것이다. "나도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고 싶은데, 내가 지은 죄가 너무 심각하다." 성령님의 감동 속에 교인들과 목사님 앞에 나와 진지하게 물었다.
- 목사님이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구원받을 수 있다. 무슨 죄를 지었느냐?"고 묻자 아이가 대답했다. "제가 어머니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 그 말을 듣고 교인들이 다 웃었다. 그게 무슨 죄냐는 것이다.
- 그때 폴 워셔 목사님이 교인들에게 말했다. "하나님 앞에서 죄에 대한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성령님께서 이 아이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하나님 앞에 가벼운 죄는 없다
- 예수님은 살인한 것, 간음한 것, 도적질한 것 같은 큰 죄를 위해서만 죽으신 것이 아니다. 미워한 것, 시기한 것, 함부로 비판한 것, 거짓말한 것, 그 죄까지 짊어지시고 나를 대신하여 죽으셨다.
- 우리는 어떤 죄를 가볍게 여긴다. "미워하는 게 뭐 큰 죄입니까? 비판하는 게 뭐 큰 죄입니까? 영적으로 깨어 있지 않은 게 뭐 큰 죄입니까?"
- 그러나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께는 가벼운 죄가 없다. 내가 지은 가장 가벼운 죄가, 하나님 보시기에는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이실 수밖에 없었던 바로 그 죄다.
- 하나님 앞에 무거운 죄가 따로 있고 사소한 죄가 따로 있는가? 죄에 대해 쏟아부으시는 하나님의 진노와 지옥의 저주를, 내가 지은 모든 죄를 예수님이 담당하시고 죽으셨다.
6-8. 예화 — "이 사람도 구원받았다고 할 수 있는가?"
반대 방향의 오해도 있다. 사울 왕이 한 일은 내용만 보아도 받아들이기 힘들다. "이건 아니다. 이것은 용서의 범위를 넘어섰다. 은혜의 범위를 넘어섰다"고 생각할 수 있다.
- 주중 갈렙 성경공부에서 3~4월 무렵 하나님의 은혜에 관한 책(자막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들림)을 함께 읽었다. 그 책의 내용은 전부 실화,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 그 가운데 한 사람을 두고, 함께 공부하던 집사님들 사이에 이런 질문이 나왔다. "이 사람은 너무하다. 이 사람이 지은 죄를 볼 때, 마지막 순간에 회개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이 사람을 용서해 주시고 이 사람이 정말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마음에 큰 갈등을 일으키는 사람이 한 명 있었던 것이다.
목사님은 두 예화를 묶어 말씀하셨다.
-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것 같지만,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인지 기도하면서 은혜를 구해야 한다.
- "부모님 말씀을 안 들었습니다"라는 것으로 슬퍼하며 "나 같은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 것을 우리는 이해하지 못한다.
- 또 한편으로, 너무 심각한 죄를 지은 사람에 대해서는 "아무리 은혜의 하나님이라도 저 사람의 죄는 절대로 용서하지 못하신다"고 생각할 수 있다.
6-9. 같은 이름을 가진 또 한 사람의 사울
백성을 보호해야 할 사람이 하나님의 가장 신실한 사람들, 하나님의 제사장들을 자기 욕심으로 죽였다. 그런데 구약의 사울 왕과 똑같은 이름을 가진 사울이 있다.
- 그 사람이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을 쫓아다니며 잡아서 가두고 고문하고 핍박했다.
- 주님이 세우신 교회의 경건한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 죽이는 일에 제일 앞장섰던 사람이다.
- 그 사울이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다는 마음으로 백성을 죽이러 갈 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 나타나 말씀하셨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 우리가 아는 하나님이라면, 다메섹(다마스쿠스)으로 피한 교인들을 잡아 죽이고 감옥에 넣으러 가는 사울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참다 참다 못 참겠다. 너는 가다가 죽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셔야 맞다.
- 그런데 예수님은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며 그에게 회개할 은혜를 주셨다. 그 은혜를 받고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되었다.
6-10. 사울 왕은 바울보다 더 큰 은혜를 받았다
하나님은 사울 왕에게, 다메섹으로 가던 사울에게 주신 은혜보다 더 큰 은혜를 주신다.
- 사울 왕이 제사장들을 다 죽였다. 그 다음에 하나님이 사울 왕에게 어떤 은혜를 베푸시는가? 분명히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들어갔는데, 다윗을 통해서 사울 왕의 목숨을 두 번이나 살려 주신다.
- 사울은 안다. 자기를 살려 주는 분이 다윗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것, 하나님이 자기의 모든 죄를 아시고도 뉘우치고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마음으로 계속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을 사울 왕은 알고 있다.
- 그런데 사울은 회개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지금과 같은 죄악된 자리, 미움과 왕권에 대한 욕심과 자기 소견대로 살아가는 자리에서 회개하도록 끊임없이 은혜를 베푸신다. 사울은 그 은혜를 끊임없이 거절한다. 목사님은 "그것이 이미 지옥에 있는 사람의 상태" 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회개의 기회를 계속 주신다. 죽는 날까지 주신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죄인을,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이다. 사울은 다메섹으로 가던 바울이 받았던 은혜보다 더 큰 은혜를 경험하면서도 죄악된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6-11. 받은 은혜와 축복이 독이 된 사람
사울 왕은 하나님의 은혜를 안 받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받았던 은혜와 축복이 독이 된 사람이다.
- 사울 왕이 처음 왕이 될 때, 이 사건으로부터 한 30년 전쯤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셔서 그를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삼으셨다.
- 그때 사울은 어떠했는가? "저는 왕 될 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내세울 것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찾았을 때 그는 숨어 있었다.
- 하나님의 은혜로 왕이 되었고, 하나님의 은혜로 왕의 모든 권력과 복을 누리게 되었다.
-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성공과 명예와 직분이 독이 되었다. 하나님의 종으로 계속 살아가며 평생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는 복을 받았는데, 그 은혜와 축복을 가지고 하나님의 종이 된 것이 아니라 마귀의 종으로 자기 자신을 변화시켜 간 사람이다.
사울은 영적으로 깨어 있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일을 하지 않는다.
목사님은 이것을 오늘 우리의 모습에 그대로 대어 보셨다. "내가 왕인데, 내가 목사인데, 내가 이미 장로가 되었고 권사가 되고 직분자가 되었는데, 내가 이미 하나님 은혜로 경제적으로 안정을 누리게 되었는데" 하며 그것을 놓치기 싫어한다. "부족한 저를 써 주십시오. 저에게 주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니 하나님, 저를 써 주십시오" 하며 하나님의 종으로,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살아가는 일에서 사울은 점점, 점점 멀어지고 있다.
6-12. 우리는 다 변한다 — 나는 어떤 사람으로 변했는가
"지금 여러분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30년 전 사울 왕의 모습과,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가운데 많은 것을 받아 누린 30년 뒤 사울 왕의 모습을 비교해 볼 때, 나는 지금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으로 변했는가?
- 우리는 다 변한다. 안 변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태어날 때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이미 장성했고 많은 것이 변했다. 죽는 날까지 계속 변해 갈 것이다.
- 성장기의 외적인 변화는 이미 끝났을지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속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항상 변한다.
- 지금 여러분의 영적인 모습, 하나님이 꿰뚫어 보시는 속사람의 모습은 5년 전, 10년 전, 처음 예수님을 믿었을 때와 비교해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가?
- 경건 생활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는가? 기도 생활에, 큐티하는 일에,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는 일에, 교회를 돌아보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정말로 변화가 있는가?
"주위를 보니 아무도 안 변하더라. 그게 무슨 죄냐. 어머니 말을 듣지 않는 게 무슨 죄냐."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우리의 참된 모습인가?
6-13. 열심은 있으나 그것이 자기 자랑이 되는 사람들
경건하게 살아간다고 애를 쓰는 사람들이 있다. 전보다 더 열심히 말씀을 읽고, 선지자 노릇을 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능력을 행하고, 금식과 십일조와 모든 일을 다 한다.
- 그런데 이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나올 때마다 그것이 자기의 자랑이 된다.
-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말씀하신다. "나는 너희를 전혀 모른다."
- 이 사람들에게는 자기 의가 있다. 자기가 행한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서 의가 되고 공로가 된다.
목사님은 두 부류를 함께 짚으셨다.
| 모습 | 평가 |
|---|---|
|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 |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 |
| 받은 은혜와 축복 가운데 자기의 거룩과 경건을 자랑하는 것 | 예수님께서 "모른다"고 말씀하신다. |
6-14. 은혜 안에 있는 사람 — 갈라디아서 2:20
그러면 정말로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교회가 곧 갈라디아서를 묵상하게 된다고 하시며,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암송해서 날마다 묵상하면 좋겠다고 하셨다. (회중과 함께 낭독)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 내가 사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누가 사시는가? 예수님께서 사신다.
- 언제 사시는가? 예배드릴 때, 직장에서 일할 때, 불신자들과 부딪치는 일이 있을 때, 남편과 아내를 대할 때, 부모와 자녀를 대할 때. 내가 어느 곳에 있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내 안에 예수님께서 살아 계신다.
- 내 안에 예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정말로 인정하는 사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기 원하시는 말씀을 하는 사람, 그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이다.
6-15. 은혜 안에 있다는 증거 —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열매
내가 정말 하나님을 알고 은혜 안에 거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예배를 열심히 드리고, 기도를 열심히 하고, 말씀을 열심히 읽는다. 맞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을 알고 은혜 안에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 활동을 통해 나에게 어떤 열매가 나오는가?
성경은 분명하게 말한다. 내가 정말로 하나님을 알고, 내 안에 예수님이 살아 계시고, 구원받아 은혜 안에 사는 사람이라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해 날마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간다.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간다. 그것이 하나님의 언약 안에 사는 사람, 하나님을 아는 사람,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이다.
-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멈추었다? 그런 사람은 아니다.
-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믿음 안에, 은혜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미운 사람은 밉고 싫은 사람은 싫습니다." 이웃에 대한 사랑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행함이 없는 믿음이요 하나님의 은혜에서 이미 떨어진 사람이다.
- 알곡인 것 같으나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쭉정이요, 교회 안에 있는 것 같으나 참 교회에서 떠나 있는 사람이다. 마치 사울과 같다.
참 포도나무와 가지
-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어 있는 것 같다. 보면 분명히 붙어 있다. 직분자다. 모태신앙이다.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녔다. 예배를 잘 드린다. 경건의 모양은 다 갖추고 있다.
- 그런데 하나님이 딱 보시니 열매가 없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자라지 않는다. 이웃을 향한 사랑이 자라지 않는다. 교회를 향한 헌신과 충성이라는 열매가 자라지 않는다.
- 그러면 농부이시며 주인이신 하나님이 그 가지를 제해 버리신다.
- 하나님은 가지가 참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지를 무엇으로 판단하시는가? 선지자 노릇 한 것, 제사장 노릇 한 것, 귀신을 쫓아낸 것, 능력을 행한 것, 십일조를 잘 드린 것으로 하시지 않는다.
- 정말로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 열매를 맺는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커지게 되어 있다. 이웃에 대한 사랑이 자라게 되어 있다. 영적인 게으름과 나태함을 안타깝게 여기고 뉘우치며, 열심을 품고 전심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일에 삶을 드리게 되어 있다. 그 마음속의 시기와 미움과 세상을 향한 욕심이 점점 없어지게 되어 있다.
빛의 자녀
- 예수님은 빛이시다. 요한을 통해 하신 말씀이 그것이다. 하나님은 빛이시고 그분께는 어둠이 조금도 없다. 그 빛 가운데로 우리를 이미 불러 주셨다.
- 그래서 "빛의 자녀가 되었으니 빛의 자녀처럼 행하라"고 말씀하신다. "빛의 자녀처럼 열심히 행동하면 빛의 자녀로 삼아 줄게"가 아니다. 이미 하나님의 은혜로 빛의 자녀로 삼으셨다.
- 이미 은혜로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여 놓으셨으니, "네가 예수님 안에 은혜로 붙어 있다는 것을 예수님으로부터 나오는 열매로 보여 주어라"는 것이다.
- 그 열매가 성령님의 열매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성품과 헌신과 믿음과 열심이 열매로 나오는 것이다.
6-16. 열매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 예수님을 믿은 뒤로 지금까지를 돌아볼 때 크게 바뀐 것, 변화된 것이 없다. 그런데도 "나는 교회 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고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교인들을 향해, 주님은 열매를 살펴보시고 열매 없는 가지를 찍어 버리신다.
- "이신칭의 교리를 믿습니다. 저의 모든 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을 줄 믿습니다." 그 믿음이 있는데, 그 믿음에 합당한 열매,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예수님 안에 있다는 열매가 없다면 그 믿음은 가짜이고 거짓이다.
- 그 거짓 믿음을 성경은 죽은 믿음이라고 한다. 갈라디아서와 야고보서가 "너희가 그렇게 믿는 복음은 거짓 복음이요 틀린 복음이요, 하나님이 주신 복음에서 떠난 헛된 믿음이다"라고 우리에게 말씀한다.
목사님은 갈라디아서를 묵상하면서, 또 사울 왕의 삶을 자세히 살펴보면서 이 질문을 붙들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반드시 그 은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다.
- 그 열매는 어제보다 오늘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것이다.
- 어제보다 오늘 하나님을 더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으로 나타나는가? 이웃에 대한 사랑과 섬김과 용서와 긍휼로 나타난다.
- "하나님, 저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경건 생활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점점 깊어집니다. 그런데 저는 아직 이 사람은 밉습니다. 이런 인간은 싫습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거짓 믿음이다. 그런 복음은 없다. 그런 은혜는 없다.
7. 참고자료
설교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덧붙인 배경 설명입니다. 설교에서 직접 말씀하신 내용이 아닌 부분은 성경 본문과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성경 연구 자료에 근거했습니다. 연대는 학자마다 차이가 있어 "약"으로 표기했습니다.
7-1. 역사 배경
본문 앞뒤의 흐름
| 사건 | 성경 |
|---|---|
| 사울이 왕으로 뽑힐 때 짐보따리 사이에 숨어 있었다. 설교의 "사람들이 찾았을 때 숨어 있었다"가 이 장면이다. | 삼상 10:20-24 (9:21 참조) |
| 하나님이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명령하셨으나 사울은 아각 왕과 좋은 가축을 남겼다. 이 일로 사무엘이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다"고 선언했다. | 삼상 15장 |
| 사울이 다윗을 변호하는 요나단에게 단창을 던졌다. | 삼상 20:30-33 |
| 다윗이 놉의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가서 "왕이 내게 일을 명령하셨다"고 말하고 거룩한 떡과 골리앗의 칼을 받았다. 그날 도엑이 그곳에 있었다. | 삼상 21:1-9 |
| 오늘 본문. 도엑의 고발과 놉 제사장 학살. | 삼상 22:6-19 |
|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 한 사람만 피하여 다윗에게 갔다. 다윗은 "네 아버지 집의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 나 때문"이라고 말했다. | 삼상 22:20-23 |
| 다윗이 사울을 죽일 수 있었으나 살려 주었다(엔게디의 굴, 십 광야 하길라 산). 설교의 "목숨을 두 번 살려 주셨다"가 이 일이다. | 삼상 24장, 26장 |
- 시편 52편의 표제가 "에돔 사람 도엑이 사울에게 이르러 다윗이 아히멜렉의 집에 왔다고 그에게 말하던 때에"이다. 이 시는 악한 계획을 꾸미는 혀를 날카로운 삭도(면도칼)에 비유한다.
- 놉의 제사장들은 엘리의 후손이다(아히멜렉의 아버지 아히둡은 엘리의 아들 비느하스의 아들, 삼상 14:3). 엘리 집안에 대해서는 일찍이 심판의 예언이 있었다(삼상 2:27-36). 그렇다고 사울의 죄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며, 설교에서 말씀하신 대로 아히멜렉과 놉의 제사장들 자신은 홉니와 비느하스 같은 죄로 책망받은 사람들이 아니다.
설교에서 언급된 다른 사건
| 사건 | 성경 |
|---|---|
| 애굽 왕 바로가 히브리 사람에게서 태어난 아들을 모두 나일강에 던지라고 명령했다. | 출 1:22 |
| 헤롯 왕이 베들레헴과 그 일대의 두 살 아래 사내아이를 다 죽였다. | 마 2:16 |
| 사울(바울)이 스데반의 죽음을 마땅하게 여기고 교회를 핍박했다. | 행 7:58, 8:1-3 |
| 다메섹으로 가던 사울에게 예수님이 나타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셨다. | 행 9:1-19 |
7-2. 지리
| 지명 | 설명 |
|---|---|
| 기브아 | 베냐민 지파의 성읍이며 사울의 고향이자 왕궁이 있던 곳. 예루살렘 북쪽 가까이에 있었다. |
| 놉 | "제사장들의 성읍".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곳으로 보지만 정확한 위치는 확정되지 않았다. 당시 성막과 진설병(거룩한 떡)이 이곳에 있었다. |
| 에돔 | 사해 남쪽의 산악 지역. 야곱의 형 에서의 후손이 세운 나라로 이스라엘과 오랫동안 적대 관계였다. |
| 아말렉 | 이스라엘 남쪽 광야에 살던 유목 민족.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뒤에서 공격했다(출 17:8-16, 신 25:17-19). |
| 다메섹 | 오늘날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200km 넘게 떨어져 있다. |
| 인디애나 | 미국 중서부의 주. |
7-3. 인물
| 인물 | 설명 |
|---|---|
| 사울 왕 | 이스라엘의 초대 왕. 베냐민 지파 기스의 아들. 블레셋과의 길보아 전투에서 죽었다(삼상 31장). |
| 도엑 | 에돔 사람. 사울의 목자장(목자들의 우두머리)이었다(삼상 21:7). |
| 아히멜렉 | 아히둡의 아들, 놉의 제사장. 다윗에게 떡과 칼을 주었다가 온 집안과 함께 죽임을 당했다. |
| 요나단 | 사울의 맏아들. 다윗과 언약을 맺은 친구. |
| 엘리, 홉니와 비느하스 | 엘리는 실로의 제사장이며 사사. 두 아들은 제물을 함부로 가로채고 성막에서 악을 행했으며(삼상 2:12-17, 22),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한날에 죽었다(삼상 4:11). |
| 헤롯 | 예수님 탄생 때의 유대 왕 헤롯 대왕. 이두매(에돔의 헬라식 이름) 출신 집안이어서 설교에서 "에돔 계열"이라고 하셨다. |
| 스데반 | 예루살렘 교회가 세운 일곱 사람 가운데 하나이며 교회의 첫 순교자(행 6-7장). |
| 사울(바울) | 베냐민 지파 출신의 바리새인(빌 3:5). 사울 왕과 같은 지파, 같은 이름이다. 회심 뒤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다. |
| 가룟 유다 |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예수님을 판 사람. |
| 폴 워셔 | 미국의 설교자이자 선교 단체 대표. 회개와 참된 회심을 강조하는 설교로 알려져 있다. |
7-4. 문화
- 진멸: 히브리어 '헤렘'. 사람과 가축과 물건을 전부 하나님께 바쳐진 것으로 여겨 남김없이 없애는 것.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하는 특별한 명령에만 쓰였다. 사울은 이 방식을 하나님의 원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제사장 마을에 적용했다.
- 세마포 에봇: 제사장이 입던 베로 만든 겉옷. "에봇 입은 자 85명"은 직무를 맡은 제사장 85명이라는 뜻이다.
- 에셀 나무 아래, 손에 단창: 왕이 나무 그늘에 앉아 신하들을 세워 놓고 회의와 재판을 하는 모습이다. 단창은 사울이 늘 쥐고 있던 무기로, 다윗과 요나단에게 던졌던 바로 그 창이다.
- 왕의 신하들과 호위병: 17절의 "호위병"은 왕 곁에서 명령을 수행하는 병사들이다. 왕의 명령을 거부하는 것은 목숨을 건 일이었다.
- 포도나무 가지치기: 포도 농사에서는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를 잘라 낸다. 예수님이 요한복음 15장에서 이 농사법으로 말씀하셨다.
7-5. 신학 용어
| 용어 | 풀이 |
|---|---|
| 오래 참으심 | 하나님이 죄인을 곧바로 심판하지 않고 회개할 시간을 주시는 성품(벧후 3:9, 롬 2:4). |
| 회개(悔改) |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 마음과 삶의 방향이 바뀌는 것을 말한다. |
| 영접(迎接) |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받아들이는 것(요 1:12). |
| 보혈(寶血) |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 죄를 대신 갚으신 죽음을 가리킨다. |
| 이신칭의(以信稱義) |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교리(롬 3:28, 갈 2:16). |
| 죽은 믿음 | 야고보서의 표현.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한다(약 2:17, 26). |
| 다른 복음 | 갈라디아서의 표현. 바울은 그리스도의 은혜에서 떠나 따르는 "다른 복음"을 엄하게 경고한다(갈 1:6-9). |
| 자기 의(自己義) | 자신의 선행과 종교적 열심을 하나님 앞에 내세울 공로로 삼는 태도. 설교에서 인용된 말씀은 마 7:22-23(선지자 노릇, 귀신 쫓음, 권능)과 눅 18:11-12(금식과 십일조)이다. |
| 참 포도나무 | 요 15:1-6. 예수님이 포도나무, 아버지가 농부, 신자가 가지다. 열매 맺지 않는 가지는 제거된다. |
| 빛의 자녀 |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요일 1:5).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 5:8). |
| 성령의 열매 |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갈 5:22-23). |
| 가장 큰 계명 |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씀(마 22:37-40). |
| 보이는 형제 사랑 | 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보지 못하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는 말씀(요일 4:20). |
| 쭉정이 | 속이 빈 곡식 껍질. 알곡과 대조되는 심판의 비유(마 3:12). |
| 경건의 모양 |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딤후 3:5). |
| 속사람 | 겉으로 보이는 몸과 달리 하나님 앞에 있는 내면의 사람(고후 4:16). |
| 착하고 충성된 종 | 달란트 비유에서 주인이 종을 칭찬하는 말(마 25:21). |
| 모태신앙 | 믿는 부모에게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교회에서 자란 사람을 이르는 말. |
| 큐티(QT) | Quiet Time. 날마다 정한 시간에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는 경건 생활. |
8. 정리하며 확인할 점
- 이 영상의 자막은 설교 중간(도엑을 설명하는 대목)부터 시작합니다. 본문 낭독과 설교 도입부는 정리하지 못했습니다. 설교 뒤 회중이 함께 기도한 구간도 자막이 깨져 있어 담지 못했습니다.
- 자동 자막의 인식 오류로 일부 표현과 고유명사, 함께 읽은 성경 구절은 성경 본문에 맞추어 바로잡았습니다. 설교자의 표현과 미세하게 다를 수 있습니다.
- 갈렙 성경공부에서 읽었다는 책 제목은 자막에 "하나님의 은혜"로 들리지만 정확한 제목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 폴 워셔 목사 예화의 장소는 자막에 "인디아나"로 들려 미국 인디애나로 적었습니다.
- 나일강에 남자아이를 던지라는 명령 부분은 자막에 "바로 그 한 명령"으로 들려, 문맥과 출애굽기 1:22에 맞추어 "바로 왕의 명령"으로 정리했습니다. 헤롯의 명령도 자막이 깨져 마태복음 2:16에 맞추어 "두 살 아래"로 적었습니다.
- 갈라디아서 2:20을 읽은 뒤 자막에 "17절 말씀을 보십시오"로 들리는 부분은 방금 읽은 20절의 내용을 설명하신 것이어서 절 수를 적지 않았습니다.
- 설교에서는 도엑이 놉으로 가서 제사장들을 죽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 본문은 제사장들이 먼저 사울 앞에 불려 와 85명이 죽임을 당하고(22:11, 18), 이어 놉 성읍이 칼에 맞았다고(22:19) 기록합니다.
- 사울이 왕이 된 때를 "30년 전쯤"이라고 하신 것은 어림이며, 사울의 통치 기간은 사도행전 13:21이 40년으로 말하고 사무엘상 13:1의 숫자는 해석이 갈립니다.
- 2~4장과 6장(설교 흐름·결론·기도 제목·설교 내용 정리)은 설교에서 실제로 말씀하신 내용만 담았고, 7장 '참고자료'는 이해를 돕기 위해 덧붙인 배경 설명입니다.